"은빛 파도"출렁이는 억새축제
또래와의 관계는 모든 아이에게 중요하지만, 다문화 자녀에게는 더 복잡한 층위의 고민을 동반합니다. 단순히 친구를 사귀는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 언어적 배경, 외모적 특징 등이 관계 형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왜 네 엄마는 한국말을 못 해?”, “넌 왜 이름이 이상해?”, “집에서는 무슨 말을 해?” 같은 질문은 아이의 내면을 흔들 수 있는 강한 자극이 됩니다. 처음에는 그저 궁금해서 묻는 말일지라도 반복되다 보면 다문화 자녀는 스스로를 **‘다른 존재’**로 인식하게 되고, 이는 또래와의 거리감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결국 친구를 사귀는 과정이 자존감과 정체성에도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가 되는 셈입니다.
다문화 자녀가 또래관계에서 겪는 어려움을 겉으로 말로 표현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신 “괜찮아”, “친구 없으면 혼자 노는 게 좋아” 같은 말을 하지만, 그 이면에는 상처와 위축감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부모는 말보다 아이의 표정, 행동, 대화의 맥락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갑자기 학교 얘기를 꺼내지 않거나, 예전에 좋아하던 친구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면 그건 관계에서 불편함이 생겼다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특히 다문화 자녀는 '내가 다르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겪는 건 아닐까?'라는 불안감을 내면화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표현하지 않는 감정을 부모가 먼저 살피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① 언어 차이로 인한 소외감
아이의 어휘력이나 발음, 말투에서 또래와 차이가 느껴질 경우, ‘어색하다’, ‘이상하다’는 반응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은 아이에게 수치심을 주고, 말을 아끼는 성향으로 바뀌게 만듭니다.
② 외모나 배경에 대한 호기심이 상처로 이어질 때
피부색, 머리카락, 가족 배경 등에 대한 질문은 자칫 아이를 구경거리처럼 느끼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반복되면 스스로를 ‘특이한 존재’로 받아들이게 되며, 사회적 위축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③ 차별 아닌 차별, 은근한 배제 경험
공식적인 괴롭힘은 없지만 놀이에 끼워주지 않거나 모임에서 제외되는 등의 ‘소극적 배제’는 아이에게 큰 상처가 됩니다. 이 경우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고 혼자 감정을 삭이게 됩니다.
① 일상 속 ‘사회적 언어’를 가정에서 연습시키기
친구에게 어떻게 말을 걸면 좋을지, 어떤 말이 친구를 기분 좋게 만들 수 있을지 등을 상황극처럼 연습해보세요. 예: “오늘 너 머리 예쁘다”, “우리 같이 놀까?” 같은 간단한 표현도 반복 연습하면 실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② 감정 단어를 익히는 가정 대화 훈련
“오늘 기분 어땠어?” “무슨 일이 속상했어?”처럼 구체적으로 감정을 묻고, 표현하는 연습을 시켜주세요. 자신의 감정을 명확히 말할 수 있는 아이는 친구 관계에서도 자신을 지키는 힘을 갖게 됩니다.
③ 다문화 배경에 대해 자랑스럽게 소개하는 법 가르치기
아이의 문화적 배경을 숨기기보다 자랑스럽게 소개할 수 있는 언어를 가르쳐 주세요. “우리 집은 한국이랑 필리핀 문화를 같이 지켜요”, “난 두 개 국어를 해요” 같은 말은 정체성과 자신감을 동시에 키워줍니다.
④ 부모가 또래관계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기
부모도 어릴 때 친구와 다툰 경험, 외로웠던 기억을 진솔하게 들려주세요. 이 과정은 아이에게 공감과 위로가 되며, 친구 관계는 모두에게 도전이라는 걸 알게 됩니다. “엄마도 친구 없던 시절 있었어. 근데 그 시간이 오히려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줬어” 같은 말이 효과적입니다.
⑤ 실제 친구 관계를 도와주는 ‘작은 행동’ 실천
학교에 친구를 초대하거나, 부모가 먼저 친구의 학부모에게 인사를 건네는 식의 행동도 아이에게는 큰 힘이 됩니다. 아이가 자신의 관계망을 넓히는 데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주는 중요한 실천입니다.
부모가 아무리 잘해도, 외부 환경에서 받는 상처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그렇기에 아이가 또래관계에서 다치기 전에 자기방어력과 회복탄력성을 키우는 것이 핵심입니다. 아이가 친구의 부정적인 말에도 감정적으로 무너지지 않도록, 집에서 끊임없이 “너는 충분히 좋은 사람이야”, “모두가 널 좋아하지 않아도 괜찮아”라는 메시지를 전달해 주세요. 그리고 갈등이 생겼을 때는 훈계보다 먼저 감정의 해석과 공감부터 시작하세요. “그 친구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보다는 “네가 그 말을 듣고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 말해줄래?” 같은 접근이 아이의 감정을 건강하게 다루는 힘을 길러줍니다.
다문화 자녀의 또래관계는 단순히 친구를 사귀는 일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과 존재를 확인받는 과정입니다. 부모는 그 여정을 함께 걷는 조력자이며, 때로는 방패이자 거울입니다. 아이가 친구 관계에서 겪는 고민을 외면하지 않고, 일상의 대화 속에서 감정과 상황을 풀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아이는 그렇게 스스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그것을 특별함으로 받아들이는 힘을 키워갑니다. 오늘 하루, 아이에게 “요즘 친구들이랑 어떤 일이 있었어?”라고 자연스럽게 물어보는 것부터 시작해보세요. 그 말 한마디가 아이의 마음에 안전지대를 만들어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