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파도"출렁이는 억새축제
다문화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다양한 문화를 경험하고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동시에 정체성 혼란이나 사회적 소외감 등으로 자존감이 낮아질 위험도 함께 안고 자랍니다. 특히 외모, 언어, 성(姓), 부모의 출신 등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부분에서 또래와의 차이를 인식하게 되면, “나는 이상한 걸까?”라는 자기 의심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아이에게 부모가 어떤 말과 태도를 보이느냐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기본 태도 형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칩니다. 따라서 다문화 자녀의 자존감을 키우기 위한 대화는 전략적이고 일상적이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많은 부모가 자존감을 키우기 위해 칭찬을 많이 하려 합니다. “너는 최고야”, “잘했어!”와 같은 말은 당연히 긍정적이지만, 이것이 자주 반복되거나 진심 없이 사용될 경우, 아이는 외적인 평가에만 의존하는 경향을 갖게 됩니다. 다문화 자녀는 이미 외부 기준에 민감한 상황이기 때문에 ‘결과’ 중심의 칭찬보다 ‘존재’ 자체를 존중하는 말이 훨씬 효과적입니다. 예를 들어 “너의 생각이 정말 멋지다”, “넌 그 자체로 특별해”, “엄마는 네가 자라나는 모습이 참 좋아” 같은 문장은 아이에게 조건 없는 수용감을 줍니다. 이 감정은 자존감을 뿌리 깊게 만드는 핵심 요소입니다.
① 자주 불러주기, 이름의 힘
자녀의 이름을 자주 불러주는 것은 정체성과 안정감을 키우는 기본입니다. 특히 다문화 자녀의 경우 외국식 이름이나 이중 이름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아, 학교나 사회에서 본명을 생략하거나 왜곡해서 부르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부모가 아이의 이름을 정확히, 자랑스럽게 불러줄 때, 아이는 자신의 이름과 존재를 긍정하게 됩니다. “너의 이름엔 특별한 이야기가 있어, 그걸 모두가 알게 될 거야.”
② 거절과 실수를 받아들이는 표현 연습
아이의 실수나 거절 상황에서 “괜찮아, 누구나 틀릴 수 있어”, “이건 실수일 뿐, 넌 여전히 멋져”라는 말을 자주 들은 아이는 자기 가치가 행동에 따라 흔들리지 않음을 체득합니다. 다문화 자녀는 종종 언어적 실수나 문화적 차이로 주눅 들 수 있으므로 실수에 대한 관용과 격려는 필수적입니다.
③ 아이의 설명을 끝까지 듣는 ‘기다림의 대화’
언어 습득이 두 가지 이상일 경우, 아이는 말하는 속도가 느릴 수 있습니다. 이때 부모가 말을 자르거나 채근하는 태도를 보이면 아이는 말하기 자체를 회피하게 됩니다. 아이의 말이 조금 느려도, 혹은 서툴러도 중간에 끼어들지 않고 끝까지 듣는 태도는 아이에게 “내 말은 가치 있어”라는 메시지를 줍니다.
④ 외모나 특징에 대한 긍정적 명명
다문화 자녀는 외모나 피부색, 머리카락 등으로 주변에서 다름을 지적받는 일이 많습니다. 부모는 이런 특성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긍정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예: “너의 머리카락은 햇빛 같아”, “피부색이 정말 건강하고 멋져 보여”. 스스로의 신체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감정은 자존감의 중요한 기반입니다.
⑤ ‘너는 어떤 생각이니?’라고 묻는 습관
지시형 언어보다 질문형 언어를 많이 사용하는 가정에서 자존감이 높은 아이가 자라납니다. “왜 그렇게 했어?”보다는 “그때 어떤 마음이었어?”라고 물어보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을 분석하고 표현하는 능력을 기르게 됩니다. 이는 자아 인식을 돕고, 자존감 형성에 직접 연결됩니다.
부모가 자주 쓰는 언어 패턴은 아이의 내면 대화 방식에 큰 영향을 줍니다. 특히 다문화 자녀는 집 안팎에서 다른 기준과 언어에 노출되므로, 가정에서의 언어가 더 안전하고 안정적인 느낌을 줘야 합니다. “왜 그랬어?” 같은 판단형 문장보다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말해 줄래?”처럼 감정 중심, 설명 중심의 언어 사용이 정서 안정과 자존감 향상에 도움이 됩니다. 또한 부모가 자신의 모국어를 자랑스럽게 사용하는 모습은, 아이가 언어뿐 아니라 자신의 문화와 뿌리에 대해 자긍심을 갖게 하는 효과적인 정체성 교육이 됩니다.
다문화 자녀에게 ‘다문화’는 때론 낯설고 부담스러운 단어일 수 있습니다. 학교에서 혹은 또래 집단에서 이질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정에서 이 단어를 긍정적으로 정의하고, 자주 말해주는 대화 환경이 형성된다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너는 두 나라의 마음을 가진 멋진 아이야”, “두 개의 언어를 할 수 있는 건 정말 대단한 능력이야” 같은 표현을 반복적으로 들은 아이는 자신이 가진 다름을 차별이 아닌 특별함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그 인식은 자기 존중으로, 자존감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다문화 자녀의 자존감은 하루아침에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부모의 일상적인 말 한마디, 반응 하나하나에 쌓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내가 특별하다는 걸 아는 아이”로 키우기 위해 필요한 건 화려한 교육이나 심리치료가 아니라 존중하는 대화 습관입니다. 오늘 하루, 아이에게 “널 만나서 나는 정말 행복해”라고 진심 어린 한마디를 전해보세요. 그 짧은 문장이 아이 인생의 기준이 될 수 있습니다.